강의
Professor
- “시장”과 “경제”에 대한 논의들
- 맑스, 폴라니, 푸코… ← 여전히 “노동”과 “생산”에 주목, 시장과 경제 자체는 논하지 X
- “시장”이 어떻게 구성되는가? → 아파두라이, 칼롱, 무네이사…
- 사회과학의 모든 논의는 “주체성subjectivity”에 대한 것
- 예: 정치학에서의 “시민성citizenship”은 무엇인가?
- <Social Life of Things> - 초점을 주체성에서 사물성(thingness)으로 전환
- 푸코 - 사물의 배치에 관심을 두지만, 사물성보다는 사물에 의해 주조되는 주체성에 관심
- 아파두라이 - 상품을 상품이게 하는 조건들 연구 (시민성이 시민을 시민으로 만드는 요소에 관한 연구인 것처럼…)
- 사물을 특정한 존재형태(상품, 선물, …)로 만드는 조건들이란?
- 예: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경제적 주체성
- 노동자 → (자기계발하는) 기업가적 주체, 투자자 주체…
- (주체가 특정한 경제적 대상과 맺는 관계 변화했다는 의미) ← 그렇다면 그 경제적 대상의 성격은 그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가(상품 → asset, …)?
- 예: 최근의 “커먼즈” 논의
- (*소유물로서의 존재에서 공유물로서의 사물로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 논의 부족)
- 인류학에서는 사물에 대한 관심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 (*모스는 사물이 주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주목 (ANT라기에는 부족))
- 아파두라이는 인류학과보다 역사학과에서 더 많이 읽는다
- 미시사 → global histories로 전환 (ex. Mintz, 설탕의 역사)
- 사물을 따라가며 엮인 네트워크 들추기 (1990-2000년대에 영향 발휘 (∵ 글로벌화))
- (⇒ Anna Tsing, 자본주의 공급사슬)
- 아파두라이 본인은 신유물론이나 물질론적 전환에 속하지 않지만, 최소한 인류학 내에서는 그러한 전환의 기반을 닦음
Discussion
Q. Thing 자체보다는 social life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A. 그렇죠… 나중에는 사물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논하긴 하지만, 아파두라이는 기본적으로 사회구성주의자니까 신유물론과는 거리가 있죠. 선물 교환을 염두에 두고 썼다기보다는 선물/시장의 이분법이 문제였으며 이것들을 하나의 사물이 지나가는 삶의 경로로 보죠.
- 사물을 분류하는 데도 여러 범주가 있을 수 있다 (상품에도 common한 것과 singular한 것이 있다). 와이너가 이야기한 “양도 불가능한 소유물inalienable possession”처럼…
- 아파두라이는 상품 경로 내에서의 분기는 무시함 (상품 경로 밖에서의 divergence에만 집중)
- cf. 제사용 병풍판? (Tiv족의 친족영역? Pf. 양도 불가능한 sacra에 가까운 듯)
- luxury나 collectible ← 상품이면서도 singular한 위치 점함 (Pf. 오타쿠 분들… 살 때 두 개씩 사잖아요… 하나는 포장도 안 뜯어놓고… 도저히 팔 수 없는.)
- singular한 것을 수집하는 것이 독특한 현상인지? → 오히려 최근 상품 시장 자체가 collectible로 향하는 것 같다 (cf. 볼탕스키)
- singular한 경험을 소비하는 형태들 (ex. 와인 → 시장에서 뽑혀져 나와 enclaving 되었다가 특수한 조건에서 다시 상품으로 나옴) (ex. 미술품 시장… BTS의 RM의 영향으로… 맨날 미술관 가서 사진 찍고… 그럼 아미들이 그거 보고 아 좋아하고… ㅋㅋㅋㅋ) (ex. 스니커즈 리셀시장) (ex. 포켓몬 초판카드)
- cf. 아파두라이 글의 마지막 장 “knw and commodities” - 우표 등 collectible의 시장 (이 collectible의 valuation을 위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포켓몬 카드처럼))
- ↔ 맑스: 상품을 위해서는 공동체 필요 없다 (즉각적으로 교환가능) → 시장은 공동체 사이에서 등장하고, 시장이 등장하는 순간 공동체의 관계가 바뀐다
- Pf. 팬덤 공동체는 상품의 singular한 속성 강조 (affective values, moral valuation 등과 연관)
- (ex. TV프로 진품명품 - 해설위원들이 시장가치는 낮지만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식으로 말함)
- cf. Pokemon capitalism: 현대 자본주의를 일컫는 표현 중 하나(,,,) asset 논리에 의해 굴러가는 자본주의 (포켓몬 모아서 분류하고 키워서 더 많은 부 창출하기 ← 어릴 적부터 훈련받는 태도)
- (ex. NFT - 소유권의 경로들 지정 → cultural biography 자체가 상품이자 asset이 됨)
- 상품이 아닌 것 같은 상품들 (ex. 품종견/묘, 사람의 서비스와 장기(←코피토프도 언급))
- Graeber는 social life of labor commodities에 대해 논했으나 Appadurai는 그렇지 않았다 (둘이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아파두라이가 맑스에서 출발하여 그에게 복귀하는 느낌.
- cf. 플랫폼과 노동자와의 관계에서는 무엇을 노동으로 간주할 것인가가 관건 (플랫폼은 소위 ‘그림자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음) ← 인식의 문제를 넘어서서 어떤 조건들이 작동하는가가 아파두라이의 탐구 주제
- 아파두라이는 서비스를 언급만 하고 넘어감…
- 아파두라이와 코피토프는 사물만 thing으로 보지 않음 (인간/사물 이분법은 근대 서구적 사유)
- 일종의 liberal fantasy (”나”는 상품이 될 수 없는 주체 (*나는 포켓몬을 사육하지 내가 가서 싸우지는 않잖아요 ← ㅋㅋㅋㅋ))
-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교환될 수 없는 것들의 범주가 확장됨 (ex. “여성” → 성매매나 매매혼이 문제시됨) “노예” → (신안 염전노예 등)) → 어떻게 이해해볼지 고민할 것
- 맑스주의 내 대립: 생산 vs 교환 패러다임 (무엇을 우선시할 것인가?)
- 아파두라이는 교환을 중심으로, 그레이버는 생산을 중심으로 봄 (→ 아파두라이를 시장주의자로 비판)
- “자본주의 이행에서의 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과 관련
- Pf. 제 입장에서는 거의 헛짓거리예요 왜냐면 맑스는 “생산 영역에서 발견되는 노동력 상품의 특이한 교환”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과 교환을 나누고 뭐가 먼저니 하는 건 웃긴 이야기입니다 제가 읽는 맑스는 생산 영역에서 이 전체 체제를 부정하는 한 지점이 있는데 그게 노동력 교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디에서 부정성 지점을 찾을 거냐가 핵심 (가라타니 고진에 대한 서평 같은 거 보면 아직도 그런 걸로 싸우고 있음) ← ㅋㅋㅋㅋ
- 시장, 경제의 영역이 상품을 둘러싼 신화에 관련되어 있다 → 그 상품의 궤적을 어떻게 추적할 것인가
- 가치있다고 판단되어 교환에서 빠지는 enclaving 또는 무용해져서 교환이 중단되는 death of things (cf. waste of things - 상품이 쓰레기로 간주되는 조건들)
- 부정성negativity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Munn - 부정성은 존재하며, communal value를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 Mauss - 부정성은 존재하며,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데 기여한다
- Marx - 부정성이 따로 존재하는 것 X (Pf. 맑스와 모스가 잘 섞이지 못하는 지점?)
- 예: 서명, 인감, 등기부등본, 행정관료 → 특정한 사물(토지)이 상품이 되도록 하는 장치들
- (*등기부등본을 떼면 땅의 전 역사가 나오잖아요)
- 허구적 상품으로서 토지 해체하려면?
- 의식 전환을 하자 X 장치들을 새롭게 배치하고 재구성하자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