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madland>
- 불안정성을 즐기라는 말이 얼마나 기만적인가…
- 사회적 안전망 없이 단기 일자리를 찾아 다니는 주인공 Fern의 모습 ← 여유롭기보다는 위태로워보임
- 어떤 이유에서든지 길가로 내몰린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인물들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해보여서인지 딱히 긍정적 현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 돈을 빌리기 위해 동생한테 찾아가는 장면에서 둘의 처지가 극명히 대비되는 듯 보임
- 완전히 다른 세계에 거주하고 있다는 느낌
- Fern이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거나, 동생이 언니를 변호해주려고 노력하는 장면들로부터 노마드 자신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포장하든 그들이 정상성으로부터 탈락한 처지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듯해서 불편했다
- Fern은 줄곧 자족성을 강조하지만, 그 역시 동생이 아니었으면 길거리에 나앉았을 것
-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house를 잃을 수 있고 거기에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줌
- house와 home은 다른 문제
- Fern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자연과 어우러지는 장면에서는 어디든 home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데, 과거에 거주했던 빈 집에 돌아가서도 쓸쓸해하는 그의 모습으로부터 결국 마음 둘 곳이 없으면 그 어디도 home이 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제시하는 듯했음
-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대안 공동체는 바로 그 이유에서 가족이 될 수 없던 듯(노예의 반댓말은 자유민이 아니라 소속 없는 자라는 말이 연상됨).
- 만일 Fern에게 자식이 있었더라면 차에서 살 수 없었을 듯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
- 서구사상의 생명경시적 경향 (자본주의&공산주의 모두)
- → 생명을 존중하면서 민중 중심적인 개혁을 이루어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 동서양의 사상을 아우르는 기묘한 생명이해
- “물질적 형상들이 궁극적으로는 생명활동의 피조물”
- 물질과 생명 간의 이분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창조주와 피조물을 대치시키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다 그렇다)
- 생명의 운동이 끝나면 생명은 물질이 된다는 식의 이해에 동의할 수 없다
- “생명현상 그 자체는 운동”이자 “끊임없는 자기 극복과 자유 확장의 노력”이라는 앞선 문장들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물질이 생명에 비해 열등하다(즉, 동태적인 것이 정태적인 것에 비해 열등하다)는 견해에는 반대한다
- 반-기술결정론적인 시각
- 기술의 본성은 생명 지향적이지만 어떤 세계관과 가치관에 의해 “통어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 translation의 역어인가?
- “끝없이 변화하는 이 생명, 즉 기를 태극 즉 근본적으로 일원적·통일적인 것으로 보고 통일적인 전일체적 생명운동 속에서 음양의 분리를 보느냐”
-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하고자 노력하지만 여전히 이성애자-성인-남성 중심적인 듯한 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