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Kari Polanyi Levitt 역시 유명한 대안경제학자 (국내 컨퍼런스에 자주 옴)
폴라니의 주요 업적들?
경제인류학자로서 대표적인 실체론자 (cf. 형식론vs.실체론 논쟁)
사실상 논쟁을 처음 시작한 사람 (cf. <인간의 살림살이>)
‘경제적’의 두 가지 의미
형식적 경제: ‘절약하다’ ‘경제적이다’ → 목적수단 관계의 논리적 특성(p.109)
실체적 경제: “인간은 자신과 자연환경 사이의 제도화된 상호작용 덕택에 살아간다. 이 과정이 바로 경제이다.”(p.110)
→ P: 이 두 가지 의미에는 아무 공통점 X
칼 맹거가 이 둘을 합치시키려 함 (115-119)
경제사연구
경제학과에서는 거의 안 읽지만, 경제사에서는 많이 읽음
시장과 사회 연구에 ‘embeddedness’ 이용
어떻게 시장을 재착근화시킬 것인가?
폴라니가 수용되는 맥락: 경제적 행위와 사회적 연결망의 관계, 사회적 자본과 신뢰…
페르낭 브로델, 이매뉴얼 월러스틴, 조반니 아리기 등에 영향 미침
특히 <거대한 전환>을 위주로
<거대한 전환>이 1944년에 출판된 것의 의의?
제2차대전의 원인을 장기19세기의 관점에서 파악
예) 아리기는 미국 헤게모니를 장기 20세기의 관점에서 파악
폴라니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 미국 헤게모니에 대해 낙관적 (ex. 뉴딜에 호의적)
Discussion
이전까지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좋은 관계를 맺던 시기 (루즈벨트가 스탈린을 좋아했다고,,?)
자기조정적 시장의 등장 및 소멸 ← 두 번의 거대한 전환
폴라니의 자본주의에 대한 장밋빛 전망 (1940-70년대 미국) ← 근시안적
그레이버의 부르디외 비판: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비판하며 시작하지만, 사람들의 행위를 (상징)자본의 함수로 설명하기 때문에 전략적 행위자로서의 계산하는 인간을 전제할 수밖에 없게 됨
G: 자본 대신 상징자본, 시장 대신 장을 사용한 것 아닌가? 합리적 계산 대신 아비투스에 영향 받아 행위하는 것도 자본축적과 유사한 측면이 있지 않은가? → 부르디외를 형식론자로 비판
cf. 이슬람의 자살폭탄테러를 (내세에 천국에 가려는) 상징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음 (부르디외를 무리하게 적용하는 것 같지만…)
형식론과 실체론이 그렇게 다른가?
1950-60년대에 논쟁이 활발히 진행되다가 일소된 이유 중 하나… 생각보다 그 둘이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
20세기 초를 풍미한 신고전파: 인간에게는 보편적 합리성이 있다 (희소성의 원리에 기반하여 효용 극대화하려) → 이러한 인간을 모든 학문 분야에 적용 가능
베버의 절충론: 형식합리성(목적에 대해 수단이 얼마나 합리적인가; 목적이 어떻든 수단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 실체합리성(얼마나 가치 있는 목적인가)
전-/자본주의 사이의 단절성을 논하는 것이 인류학적으로 말이 되는가?
단절을 양적 차이로 볼 것인가, 질적 차이로 볼 것인가?
⇒ 호모 에코노미쿠스, 합리적 판단, 전자본주의사회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 등등에 대한 쟁점이 혼재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실증 연구를 통해 논쟁 종결시키려는 움직임 존재
다른 한편으로는 맑스경제인류학의 부흥 → 둘 모두를 포괄, 논쟁 자체를 무화시킴
(생산양식, 계급투쟁 등은 한 역사적 국면에 제한되지 않고 전체 역사적 국면에 적용될 수 있다 → 보편적(형식론))
또 한편으로는 ANT쪽에서 “경제적인 것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답하지 않고 형식론과 실체론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경제적인 것에 경계를 그린 뒤 논쟁을 벌였다고 비판 (푸코, 미첼, 칼롱 등이 문제를 제기한 지점)
Q. 폴라니가 19세기에 ‘자기조정적 시장’이 등장하고 자리잡게 된 핵심적 원인으로 꼽는 것은 “기계”인데, 기술이 왜 자기조정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왜 그것이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동기를 대체시킨다고 하는 것인가?
A. 기계에 의해 노동(인간)과 토지(삶)가 상품으로서 시장에 편입되었는데, 비록 허구적 상품일지언정 그것이 시장에 편입되는 순간 사회 전체가 시장이 되는 것?
Pf. 여러분이 중간에 몇 장을 건너뛰어서 제기되는 질문… 상품이 거래되려면 소유권이 분명하고 양도 가능해야 함… 다른 장에서는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토지의 경계와 소유권이 명확해지는 과정 묘사… 또한 인간의 이동을 막고 그곳에 공장이 들어서면 공업을 시키는 모습을 보여줌… 그로 인해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탄생하게 된 것. (cf. 뉴턴이 금본위제를 확립 → 화폐가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것이 됨)
너무 기술결정론적이라는 설명이라는 비판도 존재함
Q. 폴라니는 왜 노동, 토지, 화폐를 허구상품으로 문제시하는가?
A. 생산의 3요소 (labor-wage, land-rent, capital-interest). 시장 외부를 가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을 가능케 하는 요소들조차 (허구적일지언정) 상품으로 가능해야
맑스주의 진영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의 역할이 이 세 가지를 관리하는 것으로 간주
자기조정적 시장이 확립되면서 상업자본주의에서 산업자본주의로 넘어가게 됨
이전까지는 동네장터(tradesman)와 원거리무역(merchant)이 병존했으나, 국가에 의해 이 두 개가 뒤섞이고 노동, 토지, 화폐가 상품 취급되는 nat’l market이 탄생했다
cf. 월러스틴&발리바르 - 자본은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기에) 민족적 형태를 띨 이유가 없지만, 그럼에도 대량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산업자본이 등장하게 되면서 노동력상품을 관리해주는 ‘민족’형태에 기대게 됨 (M→P→M’ 에서 P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만일 P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면 바로 투자하면 됨(예: 미장에 바로 투자할 수 있는데 왜 국장을…))
최근 들어 가라타니 고진은 상호성, 재분배, 시장 개념을 활용하여 ‘상호성’의 개념이 nation, 재분배는 ‘국가’로 인해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 (→ nation-state market). 이후 (불명인) 교환체계 X에 대해 논함.
조선경제사도 그런 식으로 서술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폴라니의 영향으로)
폴라니의 4가지 경제 원리 외에도 공유/나눔 등의 행위가 존재하는데? (cf. 그레이버 - baseline communism)
Q. 금융자본주의가 “시간”을 (허구적) 상품화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폴라니는 산업자본주의를 설명했는데, 금융자본주의는 무엇으로 설명 가능할까?
A. 지금 돌이켜보면 산업자본주의를 설명하려는 논의는 충분하지만,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설명은 잘 안 되어 있다 (투기일까?)
폴라니는 19세기에 자기조정시장이 성립되었다고 하는 것일까?
어느 지점에서는 됐다고 답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불가능한 유토피아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 시장이 사회로부터 탈배태되었다고 하면서 시장이 사회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하고 있다. 이런 애매한 지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cf. <인간의 살림살이> 95, 99쪽 ← 폴라니가 오락가락하는 것 볼 수 있음
A. 탈배태되기 위해 배태되어야 한다는 역설(?)에는 폴라니가 그다지 관심 있어보이지 않는다
A. 실제 시장은 자기조정적이지 않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행위하기 때문에 그렇게 작동된다고 주장하고 있을지도?
이후 칼롱 등의 performativity에 대한 논의를 선취했다고도 볼 수 잇을 것
“자기조정적” 시장이 로컬한지 글로벌한지를 물을 수도 있다 (nat’l scale로는 가능하지만 global scale로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일 수도?)
(*고전들이 다 그렇습니다… 본인도 왔다갔다 하고 본인도 헷갈리는 것 같고…)
이후 학자들: 배태를 “정도화”해서 폴라니의 역설 해결하자 (예: 19세기는 탈배태되는 경향, 20세기는 배태되는 경향, 신자유주의 혁명 이후 다시 탈배태되는 경향…)
문제점: 배태의 정도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사회라는 것은 일관되게 남아 있는가… (사회를 당연하게 전제하는 것 아닌가)
가능한 해석: 처음에 사회에서 떨어져나왔을 때의 사회는 Gemeinschaft, 이후 시장이 재배태화되어야 한다고 할 때의 사회는 근대적인 Gesellschaft다 (*폴라니 본인이 “오웬이 사회를 ‘발견’했다”고 주장… 사회에 배태되어 있었다면서 무슨 사회를 또 발견함??)
문제점: 문헌적 근거 부족, 여전히 사회를 단일한 유기체적 존재로 가정
<삼중운동?> - 시장, 사회보호, 해방의 3항
폴라니의 글을 받아들인다면 현재를 어떻게 읽을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글
Q. ‘해방’이라는 항이 모호하다(그 안에 존재하는 정치적 이질성을 한 데 뭉개는 듯).
A. 프레이저가 정확히 그 지점을 짚는 것 같다. 폴라니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을 때, 과연 그 사회가 보호할 만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잡아 해방운동이라는 큰 범주 안에 넣은 것? (*폴라니가 이상화하고 프레이저가 문제제기하는 “복지국가”가 지니는 억압성에 대한 문제 cf.181쪽)
프레이저에게 ‘해방’이란 축은 casting vote를 던질 수 있는 제3자
구좌파적 시각으로 신좌파를 보고 있다는 지적 존재
폴라니는 이중운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가?
폴라니의 이중운동은 좌우를 넘어 사회주의뿐 아니라 파시즘도 포함한다 (파시즘도 시장에 대한 자기보호운동의 일환). 뉴딜도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경제정책을 많이 차용했다. 이들을 구별하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윤리적 차원의 문제다
cf. 물론 폴라니는 오웬식의 사회적 협동조합을 응원합니다… 미국 인디애나 뉴하모니에 가면 오웬의 공동체실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프레이저의 논의는 오늘날의 문제가 1930년대와 비슷하다는 주장에서 시작 (*트럼프 이전의 글입니다) → 1970년대 이후로 이루어진 금융화의 모순이 2008년에 정점을 이루었는데, 왜 시장에서의 자기방어운동(이중운동)이 예전만큼 강력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가 (특히 좌파에서) ?
오늘날의 좌우 포퓰리즘은 사회의 자기방어운동같지 않은가? (*왜 좌파포퓰리즘은 우파에 비해 힘을 얻지 못하는가? 복지국가에 대한 신뢰 하락? 다양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cf. 기존에 폴라니가 얘기하는 사회방어운동이 정체성 정치에 기대어 개인을 억압하는 측면이 존재했다고 한다면, Kari Polanyi는 새로운 사회적인 것을 구성하는 출발점으로서 기본소득운동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