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한때 그를 사랑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결국에는 겁을 냈을 것이다. (19)

유대인과 가톨릭 신자, 이들은 서로에 대한 굳건한 존중을 바탕으로 서로를 장엄하게 증오했다. (24)

브렘 씨와 모레르 씨는 모두 신비주의에 빠져 있었다. 모레르 씨의 고해신부는 토마스주의를 대중적으로 풀어 쓴 책 몇 권을 권했고, 모레르 씨는 자기보다 훨씬 깊이 기독교 신학에 경도된 브렘 씨가 쏟아내는 공격에 맞서 최선을 다해 자기옹호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브렘 씨를 괴롭히면서도 필경 속으로는 개종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28)

그는 허리 깊숙한 곳에서 시작해서 골수까지 파고들어 그를 사로잡는 전율을 느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음장 같은 벼락을 맞은 듯했다. 그에게 죽음은 철저히 현재형이었다. 그것은 고독이었고 알랭은 고독을 칼날 삼아 삶을 위협했으나, 이제 칼끝이 뒤집혀 그의 창자를 꿰뚫었다. 이제 아무도 없었고 어떤 희망도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고립. (52-53)

자네는 예쁜 여자가 사랑으로 돌봐줘야 살 수 있는 사람이야. 노동의 끔찍한 압박에서 벗어난 존재가 몇몇 있어야 하지 않겠나. (80)

병리학과 심리학은 모두 신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생각도 열정만큼이나 필요한 것이고 열정도 혈액순환만큼이나 필요하다는 따위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마약이 철학을 낳은 것인지, 아니면 철학이 마약을 부른 것인지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삶은 거부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지 않은가? 그것이 나약한 것일까, 아니면 힘일까? 어쩌면 알랭이 삶을 거부하는 데에 커다란 생명력이 내재된 것은 아닐까? 그가 부정하거나 심판하는 것이 삶 자체가 아니라 그가 증오하는 삶의 어떤 측면은 아닐까? 왜 그는 결과를 개의치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 그가 경멸하는 모든 것과 결별하고 섬세한 영감에 따르지 않았을까? 섬세함이란 다른 열정에 못지않은 하나의 열정이다. 왜 그리 예쁘지도 않고 그리 착하지도 않은 여자들과 어울려야 하는가? 왜 우리 사회를 공허한 분주함으로 가득 채우는 십중팔구 불필요한 일, 그 지겨운 노동에 속박되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런 성향에 빠지면 신비주의적 반항심, 죽음의 찬양 속에 빠지게 된다. 마약중독자들은 세상에 영혼을 불어넣고 세상을 상징적 의미로 승화할 힘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세상 속에 있는 허무의 씨앗에 도달할 때까지 세상을 축소하고 닳아빠지게 하고 갉아먹으려는 물질주의 시대의 신비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태양숭배를 제물로 삼아 어둠의 상징주의를 숭배한다. 태양은 지친 눈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82-3)

석고화된 아름다움과 삶. 모든 것이 간명했고 모든 것이 끝났다. 혹은 시작이 있어본 적도 없고 끝도 없을 것이다. 영원한 찰나만 있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그 무엇도, 다른 그 무엇도 철저히 없었다. 그리고 벼락같은 허무가 왔다. (98)

파도가 늘어났고 한 겹 위에 다른 겹이 넘쳐흘렀다. 알랭은 마약을 결코 떠난 적이 없으니 마약과 재회한 것이 아니다. 고작 그뿐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어떤 중요성도 갖지 않았지만 그것이 삶이기도 했다. 마약은 삶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삶 자체이기도 했다. 격렬함이 저절로 잦아드는 것을 보면 만사가 그저 똑같을 뿐임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이해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지적인 것이라곤 전혀 없으며 오로지 확신만이 있다. (99)

알랭은 하늘이나 건물의 벽 혹은 목재 포석이 깔린 거리, 재미있는 것들에 눈길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결코 강을 본 적도, 숲을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아무도 없는 윤리의 방 속에서 살았다. ‘세상은 불완전하고 세상은 나쁜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배척하고 심판하고 파괴한다.’ 알랭의 가족은 그가 전복적인 생각을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생각이란 것이 끔찍할 정도로 결핍되어 있었다. (105)

“마약, 그것도 여전히 삶에 속하는 세계지요. 마약도 삶과 마찬가지로 지겨운 것이고요.” “아! 아니에요! 그 삶은 어떤 빛줄기가 비추는 삶이에요. 그건 아주 유익한 각성 상태죠. 겉과 속을 아는 겁니다. 양쪽의 세계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거예요.” “정말, 그렇군요. 당신은 다른 세상을 믿고 있군요.” (116)

“내가 아는 것은 나 자신뿐이지요. 삶, 그건 나 자신입니다. 그게 지나면 죽음뿐. 나라는 것,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죽음, 그건 더더욱 아무것도 아닙니다.” (119)

“우리가 삶이라고 일컫는 것, 또 죽음이라 일컫는 것. 그런 것은 보다 은밀하고 보다 넓은 어떤 하나의 측면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것에 도달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119)

‘그들을 삶에 붙잡아두는 것이 뭐란 말인가, 작품이라고!’ 그는 무상성이라는 자신의 생각에 흠뻑 빠져들었다. 댄디즘에 빠진 순진한 그는 만사가 덧없고 내일이 없는 허망한 것이라 믿었다. 허무 속에서 사라져갈 한 줄기 반짝거림. (124)

‘이 모든 게 얼마나 치욕인가. 삶은 우리를 어디까지 모욕할 수 있는가. 그러나 나는 남보다 앞질러 죽음으로 들어갈 테다.’ (126)

삶은 습관에 불과하며, 습관이 당신을 붙잡고 있는 한 삶도 당신을 붙잡고 있다. (129)

그가 부인을 참으로 건전하고 말끔하고 쾌활한 사랑으로 감싸고 있어서 그녀는 더욱더 완벽한 피조물처럼 보였다. (130)

‘너 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똑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차지하려고, 모든 이한테서 그것을 빼앗으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런 다음에야 물건이나 사람 모두를 경멸할 수 있게 된다. 그전에는 안 된다, 그전에는. 그전에는 똑바로 걷는 사람에게 침을 뱉는 절름발이 꼴이 된다. 나는 내게 찾아온 경멸이라는 아름다운 감정을 모독하고 모욕했다. 나의 삶이 발로 짓밟혀 뭉개지는 게 당연하다.’ (137)

“내 말을 들어봐요, 솔랑주. 당신은 생명이에요. 아시겠어요? 내 말을 들어봐요. 나는 당신을 건드릴 수 없어요. 끔찍한 일이죠. 내 눈앞에 당신이 이렇게 있는데, 당신이 이렇게 있는데 만질 수 없어요. 그래서 죽음을 만져보려고 해요. 죽음은 내가 만져도 가만히 있을 거 같거든요. 생명이란 게 웃기죠? 당신은 예쁘고 착한 여자이고 사랑을 사랑하지만,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지요? 그렇지 않아요?” ”알랭,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일은 타이밍이 관건이죠.” (143)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또한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자살한다. 우리의 관계가 느슨했기 때문에 그것을 좁히기 위해 자살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지울 수 없는 흠집을 남길 것이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는 살아서보다는 죽어서 더 잘 산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당신은 내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 나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151-152)

권총, 그것은 단단하고 강철로 되어 있다. 그것은 사물이다. 마침내 사물과 맞부딪치는 것이다.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