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출판사: 문학동네 (페이지 수: 발췌문) 인상깊은 문장 (> 감상평)

9-10:

……씨,

당신은 나보고 당신 집에서, 그러니까 사랑하는 내 딸 곁에서 한 일주일 머물다 가라고 하셨지요. 당신은 그 아이와 함께 살고 계시니 내가 그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또한 그 아이를 보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그래서 그 아이를 보러 오라는 당신의 초대가 얼마나 감동적인지도 잘 아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의 초대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말입니다. 왜냐고요? 내가 기르는 붉은 선인장이 곧 꽃을 피울 것 같아서요. 그것은 친구가 내게 준 매우 귀한 식물인데, 사람들 말에 의하면 이곳의 기후 조건하에서는 사 년에 한 번밖에 꽃이 피지 않는답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많이 늙었어요. 내가 없는 사이 그 붉은 선인장이 꽃을 피운다면, 이제 다시는 그것의 개화를 볼 수 없을 것만 같군요……

그러니 나의 진솔한 감사와 더불어 당신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나의 아쉬운 마음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시도니 콜레트, 출생명 랑두아'라고 서명된 이 편지는 어머니가 내 두번째 남편에게 쓴 것이다. 그 이듬해 어머니는 칠십칠 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나 자신이 주위의 모든 것들보다 열등하다고 느낄 때, 보잘것없는 나 자신에 대해 위기감을 느낄 때 근육은 팽팽함을 잃어버리고 욕망 또한 강렬함을 잃게 되었을 때, 고통조차 강도를 잃어 예리한 칼로 도려낸 듯한 아픔을 느끼지 못할 때, 나는 그러나 다시 일어나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편지를 쓴 여인의 딸이다. 이 편지, 그리고 아직 내가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편지들을 쓴 여인의 딸이다. 이 편지는 단 열 줄로 그녀가 칠십육 세의 나이에도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음을, 그러나 선인장의 개화가, 열대의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 모든 것을 중단시켰음을, 그것이 사랑하는 딸을 향한 마음조차 무력하게 만들었음을 가르쳐주었다. (…)

16: 나에게는 이제 젊은 친구들, 특히 나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이 많다. 본능적으로 나는 내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을 것이 보장된 존재를 소유하고 저장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에게 나는 고통을 준 적이 없다.

17: 나의 친구들은 항상 내게 가장 깊은 우정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즉 내가 사랑했던 남자에 대해 기꺼이 반감을 표시하는 것 말이다.

18: 꿈을 꾼다는 것,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 그것은 단지 자리가 바뀔 뿐이고, 불안의 정도가 달라질 뿐이다…….

25: 함께 있어요. 당신에겐 이제 더이상 나를 떠나버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30: 남자여, 지나간 내 사랑이여, 당신 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고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던가! 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인간관계란 없다. 그러니 나는 이쯤에서 절도 있게 물러나련다. 아니, 당신은 나를 죽이지 않았어요, 아마도 당신은 내가 아파하는 것조차 결코 원치 않았을 테지요…… 친애하는 남자여, 영원히 안녕, 그러나 당신을 환영합니다. (> 하… 안 죄송한데 남미새 같아요…)

33: 어머니는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그녀 자신이 말했듯 "스스로 데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뜨거움을 알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포기를 통해서만, 오로지 포기를 통해서만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의 포기와 성취…… 심각하게 사랑에 빠지는 어머니나 나 같은 부류의 여자들에게, 사랑의 성취와 사랑의 포기는 어떤 것이 더하고 덜하고도 없이 모두 똑같은 죄악이다.

40: 여성은 오로지 첫 남자에 의해, 첫 남자 때문에만 죽는다. 그 다음에는 결혼생활이란—혹은 동거생활일지라도—일종의 직업이 된다.

42: 준다는 것은 일종의 신경증이요, 격렬함이요, 병적인 이기주의이다.

44: 지나치게 사랑받는 아들들이여! 여인들의 시선을 받아 빛나고, 당신을 임신했던 여자에게 마음껏 애무를 받는, 어머니의 캄캄한 자궁 속에서부터 총애를 한몸에 담았던 근사하고 젊은 남자들이여, 당신들은 당신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배신하지 않고는 어머니로부터 다른 여자에게로 갈 수가 없다.

44: 오랫동안 보이지 않은 채 높이 날아다니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독수리처럼, 그렇게 노쇠가 우리에게 찾아오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라지 않는가? 도대체 노쇠란 무엇인가? 이제 알게 되겠지. 그러나 노쇠가 내 곁에 다가올 때면 나는 이미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45: 내 글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내가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할까? 천만에, 그것은 단지 나의 모델일 뿐이다.

49:

"내년에는 무얼 할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