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이전까지의 후기는 블로그에

(이하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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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남자 발언에 공감하며 들었는데 여자가 혐오스럽대서 내 안의 리틀파쇼가 그치만...그치만... 하면서 자기변명을 하려 들길래 생각하지 않으려 진땀을 뺐다. 정말 전형적인 엘리트주의적 혐오발언이지만, 매일마다 사회/국제이슈란에 올라오는 신문 기사를 보면 남자의 발언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놈들이 너무 많이 살아 있고, 번식해선 안 되는 놈들이 너무 많이 번식한다, 는 생각을 어떻게 안 하고 살 수가 있겠나, 허구한 날 테러단체가 무고한 사상자를 내고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수많은 시민들의 인생을 실시간으로 망치는 꼴을 목격하는데! 자기 입에 들어갈 걸 모르고 바다에 쓰레기를 매립하는 멍청이들과, 분수대에 반짝이 가루와 입욕제 거품을 잔뜩 푼 영상을 찍어 올리는 멍청이들과, 자기 권리를 박탈당하는 줄 모르는 멍청이들과, 멍청이들과, 멍청이들과, 멍청이들, 이 세상이 멍청이들로 차고 넘치는데!

물론 이건 매우 순화한 발언이다. 어쨌거나,

남자가 여자한테 할 수만 있다면 자기가 대신 임신하고 싶다고 입 털길래 어디 한번 복막임신해 보라고 하고 싶었다. 남자도 복막임신할 수 있어. 자기가 책임질 일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말로만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게 꼴보기 싫었다(그만큼 배우가 연기를 잘 하셨다). 여자를 다 이해해주는 체하지만 배려하려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아서 차갑게 식은 눈으로 보게 됐다.

여자 역시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남자는 입에 발린 말만 한다면 여자는 말투 자체가 거슬렸다. 남의 부모가 대놓고 싫다고 하거나, 우리 엄마가 너 싫어하잖아, 하고 대놓고 말하는 건 시비를 거는 것으로밖엔 안 보인다. 그건 솔직한 게 아니라 무례한 거다. '우리 엄마는 네가 음악을 본업 삼으려고 하는 걸 우려하시는 것 같아. 안정된 수입을 보장할 수 없으니까.' 같이 돌려 말하거나 부가 설명을 할 수도 있는 건데, 무턱대고 싫어한다고만 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되나.

나는 아직까지도 자기 애를 사랑한다는 행위가 신기하다. 기형이래도 상관없이 우리 애니까 사랑할 수 있다고 온갖 끔찍한 경우의 수를 말하는 여자가 놀라웠다. 한 생명이 존재하기도 전부터 사랑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럴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본다는 걸 이해하기 힘들다. 난 진짜 인간혐오자구나. 인류 반토막 났음 좋겠어! 다들 애 낳지 말라고! 하는 마음으로 봐서 전혀 공감이 안 됐다. 환경 문제를 얘기하려는 듯싶다가도 갑자기 구질구질한 사랑 얘기를 하고, 와중에 결혼은 안 한다고 하고(이건 결혼을 당연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는 까닭에 심적으로 납득하기 힘들었던 듯하다), 바람이나 피고, 맨날 짜증이나 내고, 잘하는 짓이다.

재회 장면에서 남자에게 공감했다. 예전에는 이런 걸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고, 답답하고, 화도 났는데, 이제는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산다고. 그렇게 사니까 편하다고. 세상이 불행으로 가득해서 일일이 신경쓰다가는 무력감과 스트레스로 죽어버릴 지경이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지만, 동시에 나를 지켜주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이 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린 좋은 사람들일까?' 캐치프레이즈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손을 잡고 마주본 채로 천천히 무대 끝으로 걸어가며, 문자 그대로 '인생의 파노라마'를 찍는 엔딩이 아름다웠다. 뒷걸음질치던 남자가 죽은 뒤에 무대에서 내려와 무대 가장자리에 일렬로 진열된 신발들을 손으로 훑으며 앞으로 걸어가는 장면은 두고두고 곱씹을 것 같다. 갈수록 목소리가 나이 들어 가는 연기가 진짜 신기했다.

그런 성찰을 했다. 내가 인간을 진~짜 싫어하면서 박애주의자나 성자를 사랑하고 인간찬가적인 얘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내가 그러지 못해서가 아닐까? 난 도무지 인간을 사랑할 수가 없어서 그걸 해내는 사람을 보면 경외감이 든다. 양가감정 없이 순수하게 사랑하기만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