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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차원의 시간성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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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당제는 적대적 공생관계로 존재하는데, 이게 당파주의고 통약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긴 어려울 듯(’통약잘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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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k 나올 때부터 자의적인 독해를 하는 것 같아서 붐따함 (굳이 안 봐도 됐을 학자들임)
- Pf. (+) 좀 더 최근의 맑스주의자들을 인용했더라면 좋긴 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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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는 다양한 심급을 논한다는 점에서 알튀세르 같고, 통약에 대해 논하는 후반부는 레비스트로스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Pf. (+) 깁슨-그레이엄은 경제지리학자. 그들도 알튀세르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한 총체성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 통약이 불가능한 채로 남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실천이 통약 관계에 의해 그리고 통약 관계로 접합될 필요가 없는 공간을 찾거나 발명해야 한다’ (412))
- Pf. 통약 불가능하고 다르게 존재하는 무엇인가(’존재론적 차이’)를 인류학에서 어떻게 논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 (민족지(재현)는 ‘인식론적 차이’이기 때문에 부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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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을 통해 장치가 생산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장치가 실천과 별개로 알아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Pf. 맑스는 apparatus를 사용하지 않음. 푸코 쪽 연구는 알튀세르의 (국가장치로서의 통제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재생산하는) apparatus를 차용하여 dispositif (배치) 사용. 칼롱은 이것들을 포괄하는 용어로서 devices 사용. 푸코의 apparatus는 벡터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게 좋다(이탈 가능성은 늘 존재하나 그럼에도 행위들을 어느 방향으로 수렴시키려고 하는 망 같은 것). 맑스는 poiesis와 praxis를 구분하는데, 전자를 재생산하는 실천, 후자를 이탈하는 실천으로 설명한다(푸코와 비교해서 이해해봐도 재밌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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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사실… 여러분… 어렵다는 게… 어렵다는 게 뭘까요?”
- 어렵다는 건 익숙지 않다는 것… 그러나 최대한 설명을 잘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