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O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난의 위협을 점점 체감하고 있다. 채소값이 반 년 사이에 거의 두배로 뛰었다. 얼마 전 보았던 트윗에서 소일렌트 그린의 대사를 인용했는데, 오늘 <퓨처라마>에서 벤더가 요리 경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에피소드에 대해 찾아보다가 거기 등장하는 식재료의 명칭이 ‘소일렌트 그린’이라기에 시기적으로 보기 좋겠다 싶었다. 배경이 2022년이라 더 흥미진진했다. 올해 보기 좋은 영화인 듯.

문제는 내가 사람 얼굴을 잘 인지하지 못해서 주요 인물을 계속 못 알아보고, 인종&성별이 같으면 헷갈려했다는 거다… 남자 중 3명의 얼굴이 서로 분간이 안 됐다. 전부 듬성듬성한 백금발에 피부가 붉고 눈이 파란 백인 중년 남성인데 그들을 어떻게 구별하라는 소리인가? 동일인물인줄 알았던 두 사람이 갑자기 주먹질하며 싸워서 당황했다. 사실 이건 내가 대사를 못 알아들은 탓이 크다. 자막이 없어서 대사의 절반 정도를 날리고 눈치껏 스토리를 따라갔다.

오프닝 시퀀스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별다른 설명 없이 이미지만으로도 성공적으로 공포감을 조성했다. 처음에는 그냥 우와~ 멋있다~ 하고 보는데 점점 아 이건 좀 징그럽지 않나 싶을 정도로 인간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사진들을 보여 줘서 불쾌감이 굉장했다. 마찬가지로 진압차 (정확한 명칭 모름) 가 등장하는 장면도 박진감 넘치고 멋있었다. <미드소마> 같은 영화를 통해 일반적인 대중에 비해서는 고어에 단련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진압차에 깔려 죽는 장면은 좀 많이 충격적이었다. 모기를 눌러 죽일 때 피가 찍 터지는 것과 유사해 보였다…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전락했는지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주인공 손(Thorn?)한테 정이 안 간다. 지금 밖에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따뜻한 물을 마음껏 틀어놓고 미인과 하하호호 샤워하고 있는 건 너무 양심없는 짓 아닌가? 남들 눈치 안 보고 오만불손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눈꼴시려웠는데 하드보일드 유의 주인공의 특징이니 생각하고 정상참작해주기로 했다. 걔가 좀 비범한 사고를 하는 인물인 건지 상업성을 위한 문제인 건지 모르겠는데, 난데없이 여주인공 셜(Sherl?)이 옷을 벗어서 당황한 나와는 달리 손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옷을 벗더라고? 그리고 스크린에 둘이 비치지 않았던 동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갑작스런 탈의 후 키스하고 뒹굴고 함께 샤워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왜…?

소일렌트 그린이 인육으로 만들어졌대도 별 수 있나?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소일렌트 그린 외의 대안이 있나? 전염병의 시기에 살고 있는 관객답게 저렇게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사람들이 근근이 살아갈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신빙성이 없어 보였다. 저 정도 수준이면 전염병이 여러 차례 휩쓸었어야 했다…

그럼에도 시각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준다는 점에서 무척 마음에 드는 영화였다.

여담이지만, <소일렌트 그린>을 본 뒤에 혁진과 덮밥을 먹으러 갔는데 미래 세대에게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어서 식사 내내 괴롭더라… 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